김종길칼럼
내용
아리랑 노래의 주제엔 붙잡아도 떠나가는 님에 대한 한恨이 담겨 있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
이러한 적개심의 표현속에는 떠나는 임이 병이라도 나서 주저앉아 내곁에 있어야 된다는 절박한 사랑이 있다.
이별은 우리 인생에 있어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만난 사람은 헤어지는 것이 이치다. 태어나서 부모와 인연을 맺었고 성인이 되면 부모와 헤어져서 나름대로 일가를 이루게 되는 것이 인생의 한 과정이다.
또 오래 사귀던 친구가 떠나가거나 십수년을 동고동락했던 부부간의 헤어짐도 있다. 그런데 이 이별이란 것이 과연 정말로 헤어지는 것인가.
공간의 세계에서는 헤어지지만 심리의 세계에선 이별의 공간의 참으로 실재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도道를 터득한 도인이나 성인聖人의 경지에서는 진실로 누구와도 의존함 없이 홀로 섬이 가능하지만 보통 사람, 중생衆生의 경지에선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심리적 별리란 곧 의존성의 완성 성숙을 통한 홀로서기가 요구되는 것이기에 이는 실제로 불가하다함이 오히려 현실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간적 이별에 대하여 이 해결되지 못한 정서적 미련이 한恨을 불러 일으키고 눈물을 흘리게 한다.
어린 성장기에 따뜻한 애정을 적절하게(적절히는 대단히 중요하다)받은 사람은 이별을 잘 견딘다. 전쟁의 학살로 부모를 상실한 한 환자는 「비롯 실제 부모는 가고 없어도 경험된 부모상은 내면에 새겨져 영원히 떠나지 않고 있음을 확신」하면서 회복되었다는 보고가 있다.
이와 같이 우리 내면 속의 사랑의 실체는 영원히 존재한다.
엄마의 모습이 잠시 보이지 않아도 영원이 없어질까봐 울며 보채는 아기와도 같이 이별을 잘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이런 내면의 사유로 인해 어떤 콤플렉스에 결려 있는 것이다.
회자정리 會者定離의 자연이치를 받아들이고 현실을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자신을 훈련해야 한다. 누구도 대신 살아 주는 인생이 아니고 이별은 아무 때나 갑자기 예고없이도 찾아오기 때문이다.(92' 6. 26.)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
이러한 적개심의 표현속에는 떠나는 임이 병이라도 나서 주저앉아 내곁에 있어야 된다는 절박한 사랑이 있다.
이별은 우리 인생에 있어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만난 사람은 헤어지는 것이 이치다. 태어나서 부모와 인연을 맺었고 성인이 되면 부모와 헤어져서 나름대로 일가를 이루게 되는 것이 인생의 한 과정이다.
또 오래 사귀던 친구가 떠나가거나 십수년을 동고동락했던 부부간의 헤어짐도 있다. 그런데 이 이별이란 것이 과연 정말로 헤어지는 것인가.
공간의 세계에서는 헤어지지만 심리의 세계에선 이별의 공간의 참으로 실재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도道를 터득한 도인이나 성인聖人의 경지에서는 진실로 누구와도 의존함 없이 홀로 섬이 가능하지만 보통 사람, 중생衆生의 경지에선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심리적 별리란 곧 의존성의 완성 성숙을 통한 홀로서기가 요구되는 것이기에 이는 실제로 불가하다함이 오히려 현실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간적 이별에 대하여 이 해결되지 못한 정서적 미련이 한恨을 불러 일으키고 눈물을 흘리게 한다.
어린 성장기에 따뜻한 애정을 적절하게(적절히는 대단히 중요하다)받은 사람은 이별을 잘 견딘다. 전쟁의 학살로 부모를 상실한 한 환자는 「비롯 실제 부모는 가고 없어도 경험된 부모상은 내면에 새겨져 영원히 떠나지 않고 있음을 확신」하면서 회복되었다는 보고가 있다.
이와 같이 우리 내면 속의 사랑의 실체는 영원히 존재한다.
엄마의 모습이 잠시 보이지 않아도 영원이 없어질까봐 울며 보채는 아기와도 같이 이별을 잘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이런 내면의 사유로 인해 어떤 콤플렉스에 결려 있는 것이다.
회자정리 會者定離의 자연이치를 받아들이고 현실을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자신을 훈련해야 한다. 누구도 대신 살아 주는 인생이 아니고 이별은 아무 때나 갑자기 예고없이도 찾아오기 때문이다.(92'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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