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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길칼럼

제목

영화이야기 - City of Joy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6.11.02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2803
내용
희망의 꽃씨


인도의 대도시 빈민굴을 배경으로 한 영화, '시티 오브 조이'(기쁨의 도시) 를 보았다. 어느 빈 일요일 아침 티비를 켜놓았더니 앞머리가 지나간 이 영화가 나오고 있었다.

한 때 의사였으나 병자가 싫어서 의사이기를 포기한 젊은이, 미국인 맥스가 이 도시에 도착하여 여러 가지 봉변을 당하고 여권도 돈도 없는 채로 변두리 호텔에 투숙한다. 같은 시간대에 시골에서 농장을 수탈 당한 농부 사하리는 딸 하나와 아들 둘 그리고 예쁜 아내를 데리고 도시에 들어 흘러들어 오는 데 이들도 한 사기꾼에게 돈을 다 뜯기고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는 처지가 된다.

마침 맥스가 골목에서 집단폭행을 당하고 있는 장면에 의협심 많은 사하리가 구해주게 되는 인연으로 우여곡절 끝에 이 가족과 맥스는 불가분의 운명에 얽힌다. 폭행 당한 상처를 무료진료소에서 치료받고 거기서 봉사하고 있는 백인여성과 만나게 되고 진료소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사하리는 인력거꾼이 되고 인력거 시장을 지배하는 악덕조직의 보스와 그 패거리, 맥스와 사하리를 축으로 하는 가난한 무리와 일대 접전 끝에 사하리 쪽이 승리하고 사하리의 딸은 행복한 결혼을 하게 되는 해피엔딩이다.

이야기는 진부한 권선징악이나 밑을 흐르는 테마는 자신을 깨달아가는 맥스의 구도적 성숙과정이다. 인도 빈민가의 모습들은 오히려 소도구일 뿐이다. 맥스는 아홉 살 때, 아버지의 외도를 눈감아 주는 대가로 아버지에게서 사탕을 받아먹으며 들은 아버지의 말, "남자는 입이 무거워야 한다." 는 암묵적 공범의식 때문에, 어머니에게 죄책감을 느끼며 살았고 아버지의 강요로 의사가 되었으나 또한 그로 인하여 의사이기를 포기하였다. 빈민촌에서 나환자 아내의 분만을 돕는 것을 계기로 하여 다시 의사 활동을 하면서 노동자들을 봉기하게 하고 자신은 자기성찰을 얻는 대가를 얻게 된다.

도시에 갓 정착한 사하리는 아이들 앞에서 화분에 꽃씨를 심는다. 이런 상징적인 행위는 희망을 심는 것이었고, 딸의 결혼식 전에 화분에서 자란 꽃 한 송이를 잘라서 딸에게 선물한다. 백일홍같이 보이는 하잘 것 없는 꽃 한 송이다. 가족의 안정과 딸의 행복을 위한 대가는 아빠가 칼에 찔리는 죽음이었다. 영화가 끝나가는 장면에서 맥스와 사하라의 대화가 인상적이다.

"사는 게 왜 이리 힘들어요."
"그래서 더 기쁨이 큰가봐요."

이 대화는 역설적이다. 빛이 없으면 그림자가 없는 이치와 같다. 음양의 조화 그 이치를, 어려운 역경을 견뎌내고서야 터득한 철학이다. 행복과 불행은 함께 다니는 짝지이니까.

우리네 서민의 역사도 그리 오래지 않았던 세월 속에 이들의 대화와 같은 내용이 있었다. 불과 반세기 전에 서울의 아스팔트 버스 노선은 지금 부산의 전철노선과 같았다. 간단한 중심노선만이 있었을 뿐이다. 중학시절 즈음에, 서울의 변두리 달동네에는 전기도 없었다. 촛불을 켜고 책을 읽었다. 서울역 앞에는 지게꾼들이 우글거리며 어려운 삶을 버텨내고 있었다. 그 역사의 흔적이라면 ' 남대문 지게꾼도 순서가 있다.' 는 말인 데 요즘 젊은이들은 이 말을 기억할까 모르겠다. 해방초기에는 인력거도 있었고, 기생이 나오는 영화장면에서는 꼭 나오는 소도구였다.

많은 인력거꾼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일상은 무미건조한 기계같은 날들이었다. 어느 날 사하리의 등장으로 모두의 능동적 삶이 가능해졌다. 이는 사하리가 희망이라는 씨앗을 심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가 혁명적 투사도 아니었다. 다만 정의를 거부하지 않는 의협심을 지키는 수동적인 의인일 뿐이었다. 그래서 영화감독은 진료소 벽에 '불란서 혁명의 깃발과 군중의 그림'을 걸어두었다. 이 그림은 상징적 메시지를 암시하고 있다.

판도라의 상자에서 훌쩍 날아가 버렸다는 희망은 이 세상 온누리에 퍼져있다. 일상에서 자유를 포기하거나 희망을 포기하고 매달리면 동물적 삶이 영위될 뿐이다. 물론 그것도 인생임에는 틀림없으나 값있는 인생은 아니다.

희망 그리고 적극적 의지. 그것을 통하여 인류는 보다 살기 좋은 조건을 만들어 가고 있다.

물질이 풍요해진 자본주의 미국에서 인도라는 거대한 빈국의 영성적 통찰력이 스승으로 군림하는 모순이 바로 이 영화에서 압축되어 전개된다. 자기중심적 청년, 남을 돕기를 거부하는 마음이 차츰 가난한 자를 돕고 거기에서 자기성찰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주는 것은 곧 얻는 것이다. 하사리가 남기는 유언 한 문장, " 고난 속에 기쁨이 있다." 그 말속에 인생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정신이 양이면 신체는 음이고, 통찰이 양이라면 물질이 음이요, 그 조화가 없이는 성숙하지 않는 것이다. 성숙하면 조화된 하나가 됨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메시지는 배금주의로 미성숙한 모든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화두라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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