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길칼럼
내용
지난 "수필시대(창간호)"에 실린 정신분석, 이 뭣고(1) 에 이어서 제명이 바뀐 "에세이스트(창간1호)"에 연재된 글입니다.
정신분석, 이 뭣고(2)
우울의 늪에서 피어나는 예술, 연꽃
연꽃은 불법을 상징하는 꽃이다. 절간에 가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도 연꽃이다. 연못에도 보이고, 부처님의 방석에도 피어있는 꽃. 종파가 달라도 불교를 상징하는 꽃만은 한결같다. 석가모니는 많고 많은 꽃 중에서 하필이면 왜 연꽃을 그들의 얼굴로 택했을까. 아마도 더러운 진흙탕 물에 뿌리를 내리고서도 아름다운 꽃송이를 만들어 내는 그 뜨거운 생명력에 경의를 나타나기 위함이었으리.
불교만이 아니다. 발리섬의 유명한 호텔 르 메르디앙에 가면 입구에는 특별히 신경을 쓴 인공연못에 화려하게 핀 연꽃이 있다. 바로 옆에는 힌두교도 복장의 현지인 가이드까지 내세우고 있는 것을 보면 불교의 전신인 고대 힌두교 역시 연꽃을 그들의 전통적인 꽃으로 삼고 있음에 틀림없다. 힌두교가 인도의 국교임으로 미루어 볼 때 고대 인도인의 삶에서부터 연꽃의 고고한 생명력은 오랜동안 대중의 연인으로 사랑받아오지 않았을까 싶다.
현대인의 병, 우울증도 마찬가지다. 더러운 물 속에서 피어올리는 연꽃과 마찬가지로 고통이 있기에 삶은 아름다워질 수가 있는 것이다. 어떤 가곡은 ‘슬프기 때문에 살아야 한다’ 고 노래한다. 우울은 삶의 간호사 같은 존재다, 기분이 들뜨면 사고는 부풀려지고 비현실로 나르게 된다. 환상과 백일몽을 치료하고 다스려 열매 맺도록 안내하는 힘은 우울이다. 마치 여름의 뜨거운 태양볕이 곡식을 열매 맺게 하듯이, 우울이란 고통의 상처는 삶을 발효시키고 침잠시켜 삶의 무게를 더한다. 물론 그 우울이 지나쳐 인생이 부서지고 파괴되는 경우가 없지 않겠지만.
국민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 피천득과 정채봉의 글에는 이러한 고통의 연꽃이 만발해 있다. 그들의 글이 아름답게 빚어지기까지에는 참으로 큰 상실의 아픔이 있음을 본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슬픔은 세상의 그 어떤 상실보다도 큰 상처다. 그들에게 예술의 혼을 불러일으킨 것은 상실의 고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고 외로움 속에서 보낸 나날은 시궁창 같은 연못에 다름없었을 터이다. 그 속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시와 수필은 바로 더러운 연못 속에 피어난 연꽃에 비유된다.
얼마 전 인기 탤런트 이은주의 자살은 많은 화제가 되었다. 사람들은 의아하게 여겼다. ‘인기 정상이고 돈도 잘 벌고 미모 있는 여자가 무슨 사연이 있었기에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했을까.’ 보도가 있고 며칠간 나를 찾는 환자들마다 그것을 화제에 올렸다. 과거에도 사회적인 명사의 그와 같은 죽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처럼 관심의 대상이 되지는 못했다. 아마도 잘 나가는 인생에도 그런 사건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관심이 갔을 것이다. 뉴스는 부지런히 그녀에 대한 문제들을 분석했지만 진실은 아무도 모르는 것. 다만 우울증이란 새로운 질환을 관심의 대상으로 부각시키는데 성공했음에는 틀림없다.
우울증에 대하여
우울증의 내면을 밝히는 일은 장님이 코끼리를 더듬는 것이나 비슷하다. 우울증이라는 넓은 스펙트럼을 두고 그것에 대한 이해와 치료방법을 논한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할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우울(우울감)은 병이 아니다. 일시적인 우울은 마치 검은 구름이 소나기를 퍼붓거나 태양을 가리고 지나가는 것이나 다르지 않다. 비가 계속되었을 때를 장마라고 부르듯이 우울증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되려면 적어도 2주일 이상의 우울이 지속될 때로 규정한다. 그 정도에 따라서 경, 중, 심등도의 상태로 구분된다. 서술의 방법 또한 일차성(원인미상) 또는 이차성(예, 신체질병 같은 선행 원인 후) 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평생을 우울증에 시달리며 살아야하는 우울성 인격장애도 있다. 치료는 그 분류나 정도에 따라서 다르지만, 현대의학의 우울증에 대한 이해와 치료는 일반인들이 아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코끼리 다리 만지듯 최근 의학보고에 나타난 유전적인 연구 결과들을 알아보자. 쌍둥이 680쌍을 대상으로 한 호주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유전요인은 있는데 생각보다는 그 영향력은 약하다.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인자의 첫째는 스트레스성 사건이었다. 이은주 사건도 겉으로 보기에는 이에 속하는데, 가까운 친인척의 죽음이라든지, 폭행, 강간, 심각한 부부문제, 이혼과 이별이 그것이다. 둘째는 신경증적 기질이다. 성격적인 결함을 말하는 것으로, 이것은 사회생활에서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최근에는 소아기 학대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데, 소아기 학대나 방임의 병력을 가진 여성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는 대인관계가 부정적이 되고 낮은 자존심을 갖게 되는 확률이 2배라면, 우울증이 되는 확률은 10배가 된다고 한다.
소아기에 학대를 받은 경험을 가진 아이가 성장하게 되면, 인체 내의 내분비 기능에 이상이 생겨서 스트레스가 오게 되면 코티솔 분비가 많아지고 저절로 우울증을 앓게 된다. 신경전달물질 중의 하나인 세로토닌 저하도 내분비계의 이상의 하나다. 부작용이 가장 적은 것으로 알려진 항우울제 ‘프로작(Prozac)’이 등장하면서 ‘프로작은 성격도 고친다’ 고 알려질 정도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지난 수년간 북미의 의약시장에서는 해마다 프로작의 판매고가 일등을 유지했다. 현대인의 우울이 얼마나 심각한 지를 알려주는 지표이다.
일생을 우울하게 살아가는 우울성격의 경우나 충동조절이 잘 안되어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실제로 프로작을 복용하면서 많은 효과를 보고 있다. 그래서 ‘정신치료가 필요 없다, 항우울제를 먹으면 된다’ 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그러나 인생의 문제가 그렇게 간단할까.
우울증의 치료에 정신치료와 약물요법을 겸하는 병합치료는 특별히 유용하다. 한 약물연구는 항우울제의 단독치료로 65%에서 절반의 증상 감소를 경험하는데, ‘정상적인 감정을 충분히 경험하는 경우’는 30%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정신치료와 병행할 때는 훨씬 효과적이다. 환자에 따라서는 더 좋아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또 약을 먹는다는 것은 정신질환의 낙인이 찍히는 것과 같다고 하여 처방해 준 약을 잘 먹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 약이 듣지 않는 경우나, 부작용을 잘 견디지 못하는 환자, 어떤 생물학적 치료에도 반응이 없는 환자는 정신치료를 함께 받아야 한다.
우울증 환자를 연속적으로 만나고 나면 나 자신도 우울해지고 만다. 전염성이 있다는 뜻이다. 나는 정신에도 전염성과 알레르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1917년 프로이트의 연구가 있다. 그의 고전적 논문, ‘애도와 우울(Mourning and Melancholia)'에 의하면 애도와 우울증은 다르다고 했다. 애도는 어떤 대상을 ’실제로 상실‘한 경우에 나타난 것이라면, 우울증은 ’감정적인 것‘이라고 했다. 또 애도에서는 이성적인 안정된 자존심을 가지나, 우울증에서는 자존심의 손상과 함께 자기비난과 자책감이 동반한다. 갑자기 남편을 잃었을 때 아내가 함께 죽을 듯 몸부림쳐도 며칠 후에는 평정을 되찾는 모습은 애도일 뿐이다. 우울증에서 흔히 나타나는 ’심한 자기비하(卑下)는 분노가 자기에게로 향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는 ’엄격한 초자아를 가정하고, 죄책감은 사랑해주던 대상을 공격하였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클라인(Klein)은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좀 다른 견해를 주장했다. 쉽게 설명해 보자. 갓 태어난 아기에게 엄마는 하느님이다. 아기는 엄마가 자기가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는 전지전능의 존재로 기대한다. 그런데 현실의 엄마는 그렇지 못하다. 전지전능이 100점이라면, 현실의 엄마가 70점인 경우도 있고 30점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 어느 경우에도 아기를 좌절하게 만든다. 부족한 점수만큼은 아기의 ‘심리적 현실’은 환상으로 채워진다. 환상값이 커질수록 아기는 정상적인 발육을 할 기회가 줄어든다. 아기의 신경조직은 출생시 아직 미숙하여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엄마 전체를 인식하지 못한다. 인식은 젓꼭지에서부터 점차 가슴과 어깨, 얼굴, 전체로 확대되어 간다. 고픈 배를 채우고, 젖은 귀저기를 갈게 되면 아기는 즉시 행복해진다. 그렇지 못할 경우 ‘전지전능한 젖꼭지(엄마)’를 상상하며 불만에 찬다. 현실적으로는 70점만 되어도 좋은 엄마가 될 여건이 충분하나 부족한 30점은 분노와 좌절로 채워질 것이며 이때 공격심을 느끼고(편집-분열위상) 30점은 환상으로 채운다.
제때에 젓을 공급해 주는 젖가슴은 ‘좋은 젖가슴’이 되고 그렇지 못하면 ‘나쁜 젖가슴’ 이 된다. 곧 善惡의 구별이 일어난다. 본능적으로 나를 만족시키는 것은 선이요 아니면 악이다. 이분법적 사고가 발달한다. 선악의 젓꼭지는 선악의 가슴으로, 선악의 엄마로 발전한다. 수개월이 지나고 주위 상황을 점차 이해하면서 환상은 조정된다. 적응을 하는 것이다. 초기의 적개심은 사실이 아님을 이해하면서 미안해지고 우울로 전환된다(우울위상). 이런 시기들을 원만히 해결하고 넘어가면 점차 성숙한 사고로 진행되고 이해력도 생긴다. 흑백의 대립에서 다양한 사고로의 확장이다. 이러한 발달 과정의 문제는 무의식의 창고에 숨긴 채로 성장한다. 성인이 되어서 어떤 좌절, 상실에 부딪치면 정서는 과거의 만족했거나 결핍되었던 싯점으로 퇴행하고 문제는 다시 살아난다. 그럴 경우 그 문제의 퇴행 정도가 얼마나 깊어지는가에 따라서 병리의 깊이가 결정된다.
이러한 발달과정이 정상적이기 위해서는 부모의 일관성 있는 보살핌과 배려가 필요하다. 환상값이 높은 아기일수록 변덕과 불충분한 배려 때문에 시작부터 정서의 불안을 겪게 된다. ‘부모가 되기는 쉬워도 부모 노릇하기는 어렵다’ 하는 의미도 그렇게 생긴 말일 것이다. 인생 초기에 모성의 역할이 중요한 것임은 당연하다. 환상값이 낮을수록 건강하게 자랄 확률은 높아진다. 클라인의 관점에서 우울증은 ‘자신의 욕심과 파괴성 때문에 자신의 내부에 있는, 사랑의 대상들은 스스로 파괴한다.’고 걱정한다, 증오스런 대상에 의해서 피해를 받았다고 생각한 나머지 전능감, 부정, 경멸, 이상화 같은 조증적 방어들이 나타난다.
이와는 달리 비부링(Bibring)은 우울 자체가 일차적 정서라고 해석하여 우울증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긴장에서 생긴다고 보았다. 존경받고 사랑받기 위한 열망에 집착한 나머지 남보다 강하고 뛰어나고, 선하게 되어 자기가치를 높이는 자기애적 갈망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열망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무력감, 무조감(無助感)을 겪게 되고, 미래의 가치관에 부정적이게 된다. ‘나 같은 게 별 수 있나. 그럭저럭하다 마는 게지. 해 봤자 헛일이야, 역시 안돼.’ 하는 식으로 일찌감치 포기하고 말게 된다.
K 여사는 49세 주부, 정신병적 우울증으로 십수 년간 치료받는 환자이다. 결혼 후 지속된 남편의 폭행과 욕설에 순응하는 세월을 보냈다. 필자가 종합병원 재직시절부터 맺은 인연은 입원과 등원치료를 계속하는 동안 필자의 개원 후에도 이어진 오랜 고객이다. 남편은 이복동생과 작은 기업을 운영하면서 계모에 대한 지나친 효심이 환자에게는 늘 불만이었다. 남편의 폭력과 일년내내 달마다 계속되는 제례에도 충실했는데, 그렇게 사는 동안 끊임없이 신체적 이상과 통증을 호소해 왔다. 치료 10년이 되는 어느 날 치료자에게 색정적인 고백을 하면서 ‘선생님과 같이 자고 싶은데 내가 색골인가요?’ 라고 자책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거부에 상처받은 불만은 급기야 순종적이던 남편에게 과감하게 공격을 시도하게 되었고, 후일 여섯 살 때 이웃에 사는 먼 친척 아저씨에게 당한 성폭행 경험도 고백하게 되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녀의 병적증상은 남편에게 폭력을 휘두르면서 회복단계에 들어섰다. 고백과 폭력을 통해 어린시절에 당한 고통에서 해방된 증례라 하겠다. 현재는 안정된 주부의 모습으로 남편과의 관계도 진정한 애정을 느끼게 되었다.
인생 초기에 당한 성폭행은 자존심에 깊은 상처가 되어 남편에게 폭력을 당하면서도 참아나갈 수밖에 없는 피학적이고 무기력한 인생을 살아야만 했다. 억압된 분노와 적개심은 병(우울증)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뒤늦게 표현된 적개심은 남편에게 폭력과 외도로 행동화(acting out)하였다. 폭력을 통한 적개심이 수용되면서 마음은 점차 안정이 되어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자기 학대는 우울증을 가진 사람들이 필히 경험하는 방어기제이다. 정(情)을 거부하는 것도 좌절과 두려움을 예방하는 방어이다. 그녀 마음속에 사랑의 연꽃이 피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인간은 느리기는 하나 계속 성장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그와 나누는 조용한 대화는 아픈 마음을 변화시킬 수가 있다. 정신분석의 효과는 영속적이기 때문에 위력이 크다. 사람이 하는 일 중에서 사람을 위하여 가장 성실하게 관심을 기울여주는 작업이 정신분석인데, 정확한 해석은 정신 체제구조의 경락과 혈에 날카로운 침을 찔러 넣듯이 효과를 나타낸다. 조용한 대화 속에서 일어나는 치료자와의 전이적 감정체험*에서 변화가 계속되고 내면은 리모델링되어 가는 작업을 계속하는 것이다. 그래서 보통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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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 정신분석과정에서 분석자에게로 향한 피분석자의 착각적 감정현상인데, 이는 어린 시절에 관계를 맺었던 중요 인물에게 경험한 사랑이나 미움의 감정이 현실에서 재현되는 현상이다. 긍정적 혹은 부정적 전이로 구별하며 분석자에게도 역방향으로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이를 역전이라고 한다.
필자 약력; 창작수필 등단(2002). 부산의사문우회 회원, 부산수필문예회원. 석필회 동인. 가톨릭의대졸업(72), 동대학원 의학박사, 신경정신과 전문의(성모병원), (전)대한신경정신의학회 부회장, 부산경남 지부학회장, 한림의대 부교수, (현)김종길신경정신과의원장. 고신, 동아, 인제의대 외래교수
정신분석, 이 뭣고(2)
우울의 늪에서 피어나는 예술, 연꽃
연꽃은 불법을 상징하는 꽃이다. 절간에 가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도 연꽃이다. 연못에도 보이고, 부처님의 방석에도 피어있는 꽃. 종파가 달라도 불교를 상징하는 꽃만은 한결같다. 석가모니는 많고 많은 꽃 중에서 하필이면 왜 연꽃을 그들의 얼굴로 택했을까. 아마도 더러운 진흙탕 물에 뿌리를 내리고서도 아름다운 꽃송이를 만들어 내는 그 뜨거운 생명력에 경의를 나타나기 위함이었으리.
불교만이 아니다. 발리섬의 유명한 호텔 르 메르디앙에 가면 입구에는 특별히 신경을 쓴 인공연못에 화려하게 핀 연꽃이 있다. 바로 옆에는 힌두교도 복장의 현지인 가이드까지 내세우고 있는 것을 보면 불교의 전신인 고대 힌두교 역시 연꽃을 그들의 전통적인 꽃으로 삼고 있음에 틀림없다. 힌두교가 인도의 국교임으로 미루어 볼 때 고대 인도인의 삶에서부터 연꽃의 고고한 생명력은 오랜동안 대중의 연인으로 사랑받아오지 않았을까 싶다.
현대인의 병, 우울증도 마찬가지다. 더러운 물 속에서 피어올리는 연꽃과 마찬가지로 고통이 있기에 삶은 아름다워질 수가 있는 것이다. 어떤 가곡은 ‘슬프기 때문에 살아야 한다’ 고 노래한다. 우울은 삶의 간호사 같은 존재다, 기분이 들뜨면 사고는 부풀려지고 비현실로 나르게 된다. 환상과 백일몽을 치료하고 다스려 열매 맺도록 안내하는 힘은 우울이다. 마치 여름의 뜨거운 태양볕이 곡식을 열매 맺게 하듯이, 우울이란 고통의 상처는 삶을 발효시키고 침잠시켜 삶의 무게를 더한다. 물론 그 우울이 지나쳐 인생이 부서지고 파괴되는 경우가 없지 않겠지만.
국민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 피천득과 정채봉의 글에는 이러한 고통의 연꽃이 만발해 있다. 그들의 글이 아름답게 빚어지기까지에는 참으로 큰 상실의 아픔이 있음을 본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슬픔은 세상의 그 어떤 상실보다도 큰 상처다. 그들에게 예술의 혼을 불러일으킨 것은 상실의 고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고 외로움 속에서 보낸 나날은 시궁창 같은 연못에 다름없었을 터이다. 그 속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시와 수필은 바로 더러운 연못 속에 피어난 연꽃에 비유된다.
얼마 전 인기 탤런트 이은주의 자살은 많은 화제가 되었다. 사람들은 의아하게 여겼다. ‘인기 정상이고 돈도 잘 벌고 미모 있는 여자가 무슨 사연이 있었기에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했을까.’ 보도가 있고 며칠간 나를 찾는 환자들마다 그것을 화제에 올렸다. 과거에도 사회적인 명사의 그와 같은 죽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처럼 관심의 대상이 되지는 못했다. 아마도 잘 나가는 인생에도 그런 사건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관심이 갔을 것이다. 뉴스는 부지런히 그녀에 대한 문제들을 분석했지만 진실은 아무도 모르는 것. 다만 우울증이란 새로운 질환을 관심의 대상으로 부각시키는데 성공했음에는 틀림없다.
우울증에 대하여
우울증의 내면을 밝히는 일은 장님이 코끼리를 더듬는 것이나 비슷하다. 우울증이라는 넓은 스펙트럼을 두고 그것에 대한 이해와 치료방법을 논한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할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우울(우울감)은 병이 아니다. 일시적인 우울은 마치 검은 구름이 소나기를 퍼붓거나 태양을 가리고 지나가는 것이나 다르지 않다. 비가 계속되었을 때를 장마라고 부르듯이 우울증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되려면 적어도 2주일 이상의 우울이 지속될 때로 규정한다. 그 정도에 따라서 경, 중, 심등도의 상태로 구분된다. 서술의 방법 또한 일차성(원인미상) 또는 이차성(예, 신체질병 같은 선행 원인 후) 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평생을 우울증에 시달리며 살아야하는 우울성 인격장애도 있다. 치료는 그 분류나 정도에 따라서 다르지만, 현대의학의 우울증에 대한 이해와 치료는 일반인들이 아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코끼리 다리 만지듯 최근 의학보고에 나타난 유전적인 연구 결과들을 알아보자. 쌍둥이 680쌍을 대상으로 한 호주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유전요인은 있는데 생각보다는 그 영향력은 약하다.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인자의 첫째는 스트레스성 사건이었다. 이은주 사건도 겉으로 보기에는 이에 속하는데, 가까운 친인척의 죽음이라든지, 폭행, 강간, 심각한 부부문제, 이혼과 이별이 그것이다. 둘째는 신경증적 기질이다. 성격적인 결함을 말하는 것으로, 이것은 사회생활에서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최근에는 소아기 학대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데, 소아기 학대나 방임의 병력을 가진 여성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는 대인관계가 부정적이 되고 낮은 자존심을 갖게 되는 확률이 2배라면, 우울증이 되는 확률은 10배가 된다고 한다.
소아기에 학대를 받은 경험을 가진 아이가 성장하게 되면, 인체 내의 내분비 기능에 이상이 생겨서 스트레스가 오게 되면 코티솔 분비가 많아지고 저절로 우울증을 앓게 된다. 신경전달물질 중의 하나인 세로토닌 저하도 내분비계의 이상의 하나다. 부작용이 가장 적은 것으로 알려진 항우울제 ‘프로작(Prozac)’이 등장하면서 ‘프로작은 성격도 고친다’ 고 알려질 정도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지난 수년간 북미의 의약시장에서는 해마다 프로작의 판매고가 일등을 유지했다. 현대인의 우울이 얼마나 심각한 지를 알려주는 지표이다.
일생을 우울하게 살아가는 우울성격의 경우나 충동조절이 잘 안되어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실제로 프로작을 복용하면서 많은 효과를 보고 있다. 그래서 ‘정신치료가 필요 없다, 항우울제를 먹으면 된다’ 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그러나 인생의 문제가 그렇게 간단할까.
우울증의 치료에 정신치료와 약물요법을 겸하는 병합치료는 특별히 유용하다. 한 약물연구는 항우울제의 단독치료로 65%에서 절반의 증상 감소를 경험하는데, ‘정상적인 감정을 충분히 경험하는 경우’는 30%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정신치료와 병행할 때는 훨씬 효과적이다. 환자에 따라서는 더 좋아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또 약을 먹는다는 것은 정신질환의 낙인이 찍히는 것과 같다고 하여 처방해 준 약을 잘 먹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 약이 듣지 않는 경우나, 부작용을 잘 견디지 못하는 환자, 어떤 생물학적 치료에도 반응이 없는 환자는 정신치료를 함께 받아야 한다.
우울증 환자를 연속적으로 만나고 나면 나 자신도 우울해지고 만다. 전염성이 있다는 뜻이다. 나는 정신에도 전염성과 알레르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1917년 프로이트의 연구가 있다. 그의 고전적 논문, ‘애도와 우울(Mourning and Melancholia)'에 의하면 애도와 우울증은 다르다고 했다. 애도는 어떤 대상을 ’실제로 상실‘한 경우에 나타난 것이라면, 우울증은 ’감정적인 것‘이라고 했다. 또 애도에서는 이성적인 안정된 자존심을 가지나, 우울증에서는 자존심의 손상과 함께 자기비난과 자책감이 동반한다. 갑자기 남편을 잃었을 때 아내가 함께 죽을 듯 몸부림쳐도 며칠 후에는 평정을 되찾는 모습은 애도일 뿐이다. 우울증에서 흔히 나타나는 ’심한 자기비하(卑下)는 분노가 자기에게로 향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는 ’엄격한 초자아를 가정하고, 죄책감은 사랑해주던 대상을 공격하였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클라인(Klein)은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좀 다른 견해를 주장했다. 쉽게 설명해 보자. 갓 태어난 아기에게 엄마는 하느님이다. 아기는 엄마가 자기가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는 전지전능의 존재로 기대한다. 그런데 현실의 엄마는 그렇지 못하다. 전지전능이 100점이라면, 현실의 엄마가 70점인 경우도 있고 30점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 어느 경우에도 아기를 좌절하게 만든다. 부족한 점수만큼은 아기의 ‘심리적 현실’은 환상으로 채워진다. 환상값이 커질수록 아기는 정상적인 발육을 할 기회가 줄어든다. 아기의 신경조직은 출생시 아직 미숙하여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엄마 전체를 인식하지 못한다. 인식은 젓꼭지에서부터 점차 가슴과 어깨, 얼굴, 전체로 확대되어 간다. 고픈 배를 채우고, 젖은 귀저기를 갈게 되면 아기는 즉시 행복해진다. 그렇지 못할 경우 ‘전지전능한 젖꼭지(엄마)’를 상상하며 불만에 찬다. 현실적으로는 70점만 되어도 좋은 엄마가 될 여건이 충분하나 부족한 30점은 분노와 좌절로 채워질 것이며 이때 공격심을 느끼고(편집-분열위상) 30점은 환상으로 채운다.
제때에 젓을 공급해 주는 젖가슴은 ‘좋은 젖가슴’이 되고 그렇지 못하면 ‘나쁜 젖가슴’ 이 된다. 곧 善惡의 구별이 일어난다. 본능적으로 나를 만족시키는 것은 선이요 아니면 악이다. 이분법적 사고가 발달한다. 선악의 젓꼭지는 선악의 가슴으로, 선악의 엄마로 발전한다. 수개월이 지나고 주위 상황을 점차 이해하면서 환상은 조정된다. 적응을 하는 것이다. 초기의 적개심은 사실이 아님을 이해하면서 미안해지고 우울로 전환된다(우울위상). 이런 시기들을 원만히 해결하고 넘어가면 점차 성숙한 사고로 진행되고 이해력도 생긴다. 흑백의 대립에서 다양한 사고로의 확장이다. 이러한 발달 과정의 문제는 무의식의 창고에 숨긴 채로 성장한다. 성인이 되어서 어떤 좌절, 상실에 부딪치면 정서는 과거의 만족했거나 결핍되었던 싯점으로 퇴행하고 문제는 다시 살아난다. 그럴 경우 그 문제의 퇴행 정도가 얼마나 깊어지는가에 따라서 병리의 깊이가 결정된다.
이러한 발달과정이 정상적이기 위해서는 부모의 일관성 있는 보살핌과 배려가 필요하다. 환상값이 높은 아기일수록 변덕과 불충분한 배려 때문에 시작부터 정서의 불안을 겪게 된다. ‘부모가 되기는 쉬워도 부모 노릇하기는 어렵다’ 하는 의미도 그렇게 생긴 말일 것이다. 인생 초기에 모성의 역할이 중요한 것임은 당연하다. 환상값이 낮을수록 건강하게 자랄 확률은 높아진다. 클라인의 관점에서 우울증은 ‘자신의 욕심과 파괴성 때문에 자신의 내부에 있는, 사랑의 대상들은 스스로 파괴한다.’고 걱정한다, 증오스런 대상에 의해서 피해를 받았다고 생각한 나머지 전능감, 부정, 경멸, 이상화 같은 조증적 방어들이 나타난다.
이와는 달리 비부링(Bibring)은 우울 자체가 일차적 정서라고 해석하여 우울증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긴장에서 생긴다고 보았다. 존경받고 사랑받기 위한 열망에 집착한 나머지 남보다 강하고 뛰어나고, 선하게 되어 자기가치를 높이는 자기애적 갈망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열망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무력감, 무조감(無助感)을 겪게 되고, 미래의 가치관에 부정적이게 된다. ‘나 같은 게 별 수 있나. 그럭저럭하다 마는 게지. 해 봤자 헛일이야, 역시 안돼.’ 하는 식으로 일찌감치 포기하고 말게 된다.
K 여사는 49세 주부, 정신병적 우울증으로 십수 년간 치료받는 환자이다. 결혼 후 지속된 남편의 폭행과 욕설에 순응하는 세월을 보냈다. 필자가 종합병원 재직시절부터 맺은 인연은 입원과 등원치료를 계속하는 동안 필자의 개원 후에도 이어진 오랜 고객이다. 남편은 이복동생과 작은 기업을 운영하면서 계모에 대한 지나친 효심이 환자에게는 늘 불만이었다. 남편의 폭력과 일년내내 달마다 계속되는 제례에도 충실했는데, 그렇게 사는 동안 끊임없이 신체적 이상과 통증을 호소해 왔다. 치료 10년이 되는 어느 날 치료자에게 색정적인 고백을 하면서 ‘선생님과 같이 자고 싶은데 내가 색골인가요?’ 라고 자책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거부에 상처받은 불만은 급기야 순종적이던 남편에게 과감하게 공격을 시도하게 되었고, 후일 여섯 살 때 이웃에 사는 먼 친척 아저씨에게 당한 성폭행 경험도 고백하게 되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녀의 병적증상은 남편에게 폭력을 휘두르면서 회복단계에 들어섰다. 고백과 폭력을 통해 어린시절에 당한 고통에서 해방된 증례라 하겠다. 현재는 안정된 주부의 모습으로 남편과의 관계도 진정한 애정을 느끼게 되었다.
인생 초기에 당한 성폭행은 자존심에 깊은 상처가 되어 남편에게 폭력을 당하면서도 참아나갈 수밖에 없는 피학적이고 무기력한 인생을 살아야만 했다. 억압된 분노와 적개심은 병(우울증)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뒤늦게 표현된 적개심은 남편에게 폭력과 외도로 행동화(acting out)하였다. 폭력을 통한 적개심이 수용되면서 마음은 점차 안정이 되어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자기 학대는 우울증을 가진 사람들이 필히 경험하는 방어기제이다. 정(情)을 거부하는 것도 좌절과 두려움을 예방하는 방어이다. 그녀 마음속에 사랑의 연꽃이 피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인간은 느리기는 하나 계속 성장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그와 나누는 조용한 대화는 아픈 마음을 변화시킬 수가 있다. 정신분석의 효과는 영속적이기 때문에 위력이 크다. 사람이 하는 일 중에서 사람을 위하여 가장 성실하게 관심을 기울여주는 작업이 정신분석인데, 정확한 해석은 정신 체제구조의 경락과 혈에 날카로운 침을 찔러 넣듯이 효과를 나타낸다. 조용한 대화 속에서 일어나는 치료자와의 전이적 감정체험*에서 변화가 계속되고 내면은 리모델링되어 가는 작업을 계속하는 것이다. 그래서 보통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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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 정신분석과정에서 분석자에게로 향한 피분석자의 착각적 감정현상인데, 이는 어린 시절에 관계를 맺었던 중요 인물에게 경험한 사랑이나 미움의 감정이 현실에서 재현되는 현상이다. 긍정적 혹은 부정적 전이로 구별하며 분석자에게도 역방향으로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이를 역전이라고 한다.
필자 약력; 창작수필 등단(2002). 부산의사문우회 회원, 부산수필문예회원. 석필회 동인. 가톨릭의대졸업(72), 동대학원 의학박사, 신경정신과 전문의(성모병원), (전)대한신경정신의학회 부회장, 부산경남 지부학회장, 한림의대 부교수, (현)김종길신경정신과의원장. 고신, 동아, 인제의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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