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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길칼럼

제목

위대한 정신병 - 아이잭 뉴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6.11.02
첨부파일0
추천수
3
조회수
4369
내용
아이잭 뉴턴 (1642-1727)

영국의 과학자 아이잭 뉴턴은 미분법 색채이론 만유인력의 발견자이며 고전물리학의 체계를 확립하였다.

그의 물리학의 특징은 가설을 만들지 않고 원리를 발견하는데 있다. 세계의 본질을 파악하는 방법에 있어 「성질들을 먼저 제시하고 추리와 실험에 의해서 그것들을 증명」한다. 이런 직관적 방식들은 흔히 정신분열병적 경향이 있는 분열병 기질자들의 사고방식과 유사하다. 느낌으로 판단한다. 「저 사람이 나를 해칠 것 같다」는 느낌에서 발전하면 피해망상이 됨과 유사하다. 과학적 본질의 이런 발견은 분열병적 기질자가 과학의 세계에서 이루는 업적이기도하다. 일본 정신과의사 <이다신>에 의하면 뉴턴은 분열병적 기질자로 파악된다. 그의 일생에서 30세, 50세 전후로 두 번의 정신병 발병이 추정된다. 보통 분열기질자는 정확한 이론가 체계수립자 형이상학자들이 될 수 있다.

뉴턴의 일생은 고독하고 불행하였다. 아버지는 「거칠고 별난 무기력한 사나이」로 37세에 겨우 농부의 딸과 결혼하고 몇 달 뒤에 사망한다. 그래서 어머니는 그가 세살 때 재혼하고 할머니 밑에서 성장하게 된다. 어린 시절 그는 침울하고 말수가 적고 어린애다운 놀이에 끼이지 못한다. 그러나 꿈을 키우는 눈에 띄지 않은 온순한 아이였다. 그에게는 실험벽, 기록벽, 수집벽, 제작벽이 유난하였고 이런 것들은 일생 계속되었다. 그는 일생을 독신으로 지냈고 생애의 대부분을 케임브리지 대학의 기숙사 방에서 기거하였다.
그의 일생에서 특징적인 것은 인간에 대한 신뢰감이 근본적으로 결핍된 사람의 가련한 모습이다. 그의 강의는 난해하고 지리한 것이었다. 그런 평판으로 가끔 출석자가 없어 빈 강의실에서 혼자 강의하였다고 한다. 그만큼 융통성이 없는 학자였다. 물론 그의 학문적 업적은 뛰어나서 평생을 왕립학회회원으로 추대되었고 20여년을 회장으로 지냈다. 그는 학술적 발표를 대단히 기피하여 그가 발견한 것을 세상 사람들은 재발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는 겁쟁이에 조심성이 많고 의심이 많은 기질이었고 한때 그를 공박한 사람에 대한 피해의식과 강박적 집착에 있었고 정신병의 상태에서는 절친한 몇 안되는 친구들마저도 피해망상과 환청으로 절교를 선언하였다.

그가 일생에서 단 한번 신뢰를 경험하는 것은 스승 아이잭 배로우의 은덕이다. 39세의 스승은 뉴턴의 능력을 인정하여 약관 26세의 그에게 교수자리를 인계하고 성직으로 들어간다. 스승과의 자기동일성의 확립이 그의 창조성을 급격한 해방으로 인도한다. 그리하여 47세로 먼저 하직하는 스승의 죽음은 그에게 「최대의 불행」이었다. 그의 일생에서 여성은 네 사람인데 어머니, 여동생, 조카 그리고 만년의 망상 속에서 그를 유혹하는 여인이었는데 여성에게는 헌신의 모습이 특징적이다.

만년의 그는 명성을 떨친 원로로서 과대망상적 취향이 있는 자족한 자폐적인 세계에서 고독한 생애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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