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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길칼럼

제목

스트레스 이야기 - 거식증, 먹는 병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6.11.02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2766
내용
문화양식이 바뀌면 음식도 바뀌고, 이에 따라서 질병의 모습도 바뀐다. 요즈음 대표적 현상이 고혈압과 당뇨병이다. 최근 네팔에 진료봉사를 다녀온 의사의 보고에 의하면 약 3,000명을 진료하는 동안 고혈압 환자가 몇 명 밖에 없더란다. 현재 우리나라에 어림잡아 열명 중 하나가 고혈압 환자인 것에 비하면 얼마나 큰 차이인가를 알 수 있다. 정신과 분야의 질환 중에는 「신경성 식욕부진과 거식증」이 그러하다.

10년전 미국의 병원 얘기다. 정신과 병원에 「먹는 병」환자의 특수병동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환자들은 열서너살부터 스물이 넘는 좋은 나이의 젊은 여자만 가득하였다. 이 병동에는 이십여명의 환자가 입원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그들과 점심식사를 같이 하면서 난 속으로 놀랍기도 했고 부럽기도 하였다. 우선 점심 식탁이 우리네 특급 호텔의 수준이고(병원이 상류층의 병원이었음), 칼로리까지 계산된 철저한 배려, 치료진이 함께 식사하며 나누는 분위기가 그랬다.

당시 내 병원에는 일년에 한 두명 쯤 그런 환자를 치료하고 있었으나, 병동을 따로 운영하는 대규모의 치료시설과 고급스런 환자대우는 우리네 사정과 너무 다른 것이었다. 한 처녀아이에게 왜 많이 먹게 되느냐고 물으니, 외로워서 그런다고 했고, 옆의 다른 아이도 합창하듯이 "어른들은 우리를 몰라요"하고 답하였다. 그로부터 몇해 뒤에 서울의 미군부대안에서 모이는 이런 환자들의 모임에 참여하였다. 몇 명이 모였는데 하나만 뚱뚱보일뿐 나머지는 날씬한 아지매들이었다. 날씬한 여자 왈, 집에서 쿠키를 구울 수가 없다. 한정없이 먹게 되니 겁이 난다는 것이다. 건강한 사람 입장에서는이런 호소가가련한 느낌을 불러 일으키게 하였다. 마음대로 먹을 수는 없다니?!

먹는 것을 멈출 수 없다. 게걸스럽게 기계적으로 먹어대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그리고 포복한 위장을 참을 길 없으니 토하러 가야한다. 손가락을 넣어서라도 힘겹게 토해내지 않으면 안되는 병, 체중이 백 킬로를 넘어가도 브레이크가 안 걸린다.

이거 얼마나 힘든 병인가. 어떤 이는 각고의 노력 끝에 정상체중으로 돌아와서 악몽 같던 지난 날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하여 쿠키조차 굽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 병의 핵심은 외로움, 거부당한 분노나 좌절감은 스트레스가 있으면 원초적 본능의 단계인 구강기로 퇴행하면서 먹는 것으로 자신을 달래는 것이다. 구강기로 돌아감은 그 시절이 제일 편하다는 안도의 휴식처이기 때문이다. 꼭 병까지는 아니더라도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해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풍요한 사회, 멋진 차, 큰 집, 일류를 지향하는 사회 속에서 엄마는 바쁘다. 자녀들에 대한 요구도 많으면서 질적으로 이해와 사랑을 나누는 시간은 적어지고, 결국 아이들은 소외된다. 그래서 "어른들은 몰라요, 우리는 외로워요"그래도 엄마가 요구하는 "예쁜딸"이 되기 위하여 고달픈 충성을 계속하다 보면 스트레스는 연속되고 딸애는 병에 사로잡힌다.

현재 국내에 이런 환자가 늘어나고 있으니, 서구 문명화의 부작용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앞으로 환자는 더 양산될 전망인데...
먹거리 문화, 소비한 생활과 소박한 밥상의 문화에서만 이 병이 예방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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