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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길칼럼

제목

초대수필 - 연필을 깍으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6.11.03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3060
내용
연필을 깎으며

崔 弘 植

흘러간 세월을 생각하면 갑자기 마음이 허전해진다. 그런 텅 빈 마음 한 구석에서 때로는 작은 바람이 일고 그것은 다시 사무친 그리움이 된다. 그 중심에 서 계시는 어머니, 드디어 가슴이 저려온다. 이럴 땐 무엇인가 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다.
책상 앞에 앉아서 겨우 마음을 가다듬고 연필을 깎는다. 나무 결을 따라 날선 칼이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칼날의 움직임에 흩어진 내 의식은 까만 연필심으로 모아진다. 나무향내가 간지럽게 느껴지면 드디어 끝이 뾰족하게 원추형으로 다듬어진다. 나는 다음의 것을 손에 쥐고 예의 연필 깎기를 다시 시작한다.
습관처럼 되어버린 이 일은 펜과 잉크의 시대와 만년필 시대에도, 이어진 볼펜의 시대에도 한결같이 계속되고 있다. 그 긴 세월, 내 책상 위의 필통에는 언제나 여러 자루의 연필이 꽂혀있고 긴 것은 결국 몽땅 연필이 되었다가 새 것으로 바뀐다. 이상하게도 연필을 깎을 때면 마음 한 구석에서부터 빛이 번지면서 정신이 맑아진다. 그리고 마음이 안정되고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다. 어쩌면 연필을 깎는다는 일은 나에게 있어서 소망을 예비하는 가장 소박한 자세인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세 번째의 연필을 깎는다. 오래도록 해왔던 이 일이 이젠 지겨운 것일까. 공연히 하던 짓을 멈추고 옛 생각에 잠긴다. 기억을 한참 거슬러 고향집을 그려보고 또 내 유년의 뜰을 더듬는다.
뜰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우리들 방이 있었다. 그 방의 작은 책상 앞에서 어머니는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나에게 처음으로 연필 깎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한동안 쩔쩔매다가 어머니의 도움으로 겨우 몇 자루의 연필을 깎아 새로 사온 필통에 가지런히 담았다. 그때 어머님께서 말씀하셨다.
"연필을 예쁘게 깎아야 돼, 그래야 뭐든 잘 할 수 있지"
그래도 그들의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서인지 나는 오로지 기쁘고 대견스럽기만 했다. 그리고 잘 깎은 이 연필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믿음도 생겼다.
무엇을 한다는 것은 바로 꿈을 실현코자하는 의지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때 내가 그리던 꿈은 너무도 평범하고 유치한 것이었다. '어머니', '어머니'하고 한글 받아쓰기 혹은 '일' '이' '삼' '사' 등의 숫자를 적어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그 일이 비록 별 것 아니라고 해도, 잘 깎은 연필로 '어머니' 쓰기를 반듯하게 하고 싶었던 작은 소망은 얼마나 대견스럽고 아름다웠던가. 더욱이 무엇을, 특히 아름다운 소망을 가진다는 것도 연필 깎기를 통해 어머니로부터 그 시절에 배웠던 것이다.
자라면서 연필 깎는 일이 나에겐 하나의 작업이 되었다. 그 의미도 보다 깊고 넓어졌다. 연필이라는 도구로 해야 할 '쓰기'라는 일이 차츰 국어 산수를 공부하는 것으로, 이어 작문(作文)을 하고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푸는 높은 수준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내일을 향한 의지로 마음이 끓었다. 고등학교 입학하면서 지은 어설픈 나의 시(詩) 중에〈연필〉이라는 제목의 것이 있다.
"오늘/나는/연필을 깎으련다/먼 내일의 소망을 위해서…"
첫 단락을 이렇게 시작한 그 시는 그때의 내 마음을 표현한 짧은 글에 지나지 않지만, 소망을 지녔던 나의 소년시절은 그만큼 아름다웠다.
그러나 나에게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중국의 문명비평가이자 작가인 임어당(林語堂)이 얘기했던가. 우리는 무엇인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 있으며 꿈을 지니고 있다고. 그래서 말단 졸병은 하사관이 되었으면, 하사관은 위관이, 위관은 영관 급이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는 것이다. 설령 대령이 되었다고 해도 본인은 그것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잘못을 저질게 된다고 했다.
내가 바로 그랬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어른이 되었을 때 소박했던 소망은 꼭 이루어져야 하는 희망으로, 더 나아가 욕망으로 발전되곤 했다.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나는 더 열심히 연필을 깎아야했고 그것은 마치 뼈를 깎는 일처럼 나 자신을 더 혹독하게 다그쳤다. 작은 성공에 이어 큰 성공을 바랐으며 더 화려한 입신양명의 길을 갈망하고 있었다. 처음의 순진한 소망은 끝없는 욕망의 길로 치닫기도 하였다. 결국 내 영혼에 상처를 냈고 상처를 입은 영혼은 방황하며 길을 잃기도 했다. 모두 어른이 되고 난 이후의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연필을 깎는 일은 내일을 위하여 내 마음을 스스로 벼루는 작업, 그 이상일 수는 없는 것이다. 책상머리에 앉아 마음을 다스리는 아주 작은 일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그 일은 분명히 내 소망을 생각하는 소중한 시간임에 틀림이 없다. 다만 내 마음이 흔들리고 답답할 때, 넘치는 욕망을 가누지 못할 때, 열정적으로 무엇을 해야지 하고 여겨 질 때 나는 먼저 그 일을 시작할 뿐이다.
지금 세 번째의 연필을 마저 깎으며 유년의 뜰에서 소박한 꿈을 그렸던 그때를 회상하고 있다. 아니 나의 꿈이 가장 순수했던 그 시절에 연필 깎는 법을 가르쳐 주셨던 어머니를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있다. 이제야 새삼스럽게 나 자신에게 묻는다. 그 긴 세월에 너는 무엇을 했느냐고. 그리고 손꼽아 헤아려보니 어머니가 돌아 가신지 어언 45년이 된다.

글쓴이 최홍식은 부산대학교 교수이며 수필가이다. 현재 학장을 하면서 김치연구소 소장님이다. 21세기 선비의 풍모를 엿보게 하는 분이고 글은 항상 담담하고도 잔잔한 감동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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