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길칼럼
내용
김종길의 정신의학세계
정신분석, 이 뭣고(1)
김 종 길
쓰나미의 두려움으로
인생은 사랑과 미움의 씨줄 날줄로 엮어진 타피스리이다. 실의 정교한 짜임새와 꼬인 매듭들로 이루어진 이 작품을 다시 수정하려면 엄청난 공정이 요구된다. 이는 다 자란 나무를 전지하려는 것이나 다름없다. 성장의 시간들로 다져진 작품에서 실들의 짜임새를 이해하고 고치려면 현미경으로 때로는 과거를 회귀하는 망원경으로의 관찰이 필요하다.
프로이트가 그 관찰의 현미경을 발견한 이래로 10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 큰 흐름은 의학은 물론 예술에까지 도도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나도 한때는 새로운 한 사람의 프로이트가 되려고 작심한 적이 있었으나, 지금 대양 같이 엄청난 과학의 바닷가에서 해수욕을 즐기는 한 과객이 되어있을 뿐이다. 그러나 서핑을 하고 태양욕을 즐기는 동안 나는 그 바다에 매료되었고, 바다는 이제 내 일부가 되어서 살아왔다. 감히 정신분석에 대해 논하려함은 부산 앞바다의 작은 해변을 논함이나 다르지 않다.
정신과에 입문하고 프로이트를 공부하기 시작한 지 어언 삼십년, 정신의학의 해저에는 프로이트 말고도 너무나 많은 인물과 이론들이 쌓여있음을 알았다. 요즘은 전국 어디에나 수련규정 매뉴얼이 있지만, 당시만 해도 교실의 주임교수에 따라 수련지침이 달랐다. 나의 수련은 생물정신의학의 흐름을 지향하고 있었다. 당시의 추세는 정신분석에서 생물정신의학으로 흘러가는 추세였다. 반세기 전에는 미국 대학병원의 주임교수 거의가 정신 분석가였고 생물정신의학으로 방향전환을 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다시 과거로 회귀하는 경향으로 양면의 조화가 요구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대학병원의 교수들 대부분이 생물정신의학자이다. 정신치료는 개원가로 미루어 지는 감이 없지 않다.
군의관을 마친 후 나의 관심은 정신치료 쪽으로 가고 있었다. 이십 수년 동안 나는 정신치료적 임상의로 지냈다. 거대한 분석의 바다를 논하기에는 부족한 경험이겠으나, 작은 해변에서의 이러한 경험은 어려운 정신분석의 바다를 안내하는 길잡이로는 오히려 적합하리라 믿어진다. 글쓰기를 공부하면서 만난 선배들에게서 정신분석에 대한 개인적 경험을 소개하기를 권유받았을 때, 나의 작은 바다는 갑자기 망망 대해로 변했고, 쓰나미를 만나는 두려움으로 불면의 밤들이 이어졌다. 다소 위안이 되는 것이 있다면 사람마다 다양한 정신구조를 가졌기 때문에 치료경험 또한 다양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자위였다. 비록 자잘한 오류가 보일지라도 현명한 강호제현께서는 사적 경험의 오해로 봐 주실 것을 감히 기대해 보려한다.
정신분석이 본격적으로 논하여진지 백여년, 그동안 공과의 논란을 많이 받았지만 그러면서도 살아남아 도도한 물결로 흘러가 수많은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주 흐름의 세 개의 유파가 있는데 정통정신분석학파(자아심리학), 대상관계학파, 자기심리학파가 바로 그것이다. 앞으로 나의 이야기는 임상중심으로 될 것이고 유파와 관계 없이 흐를 것이다. 마치 사관생도가 학교에서 배운 기초 이론을 습득하되 전투에서는 실전에 유익한 전술을 발휘함과 같다고 하겠다. 치료는 전장이고, 거기에는 실전만이 있기 때문이다. 배(이론)를 건너면 배를 버리고 가야 하는 것이 정석이다. 따라서 나는 실전의 땀냄새 나는 이야기 중심으로 엮어갈까 한다. 이야기를 따라가는 동안에 독자들은 저절로 자신의 ‘문제’에도 접근하며 분석하는 기술을 터득해 가리라 여겨진다.
실생활에서 응용되는 분석
분석능력의 향상은 수련 중의 치료 사례 토론(지도 감독), 동료와의 상호지도, 자신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꿈, 실수, 환상, 실언이나 실수행동 등을 이용한 자가분석이다. 가장 친근한 자료는 언제나 자기의 문제들이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보면 주위에는 분석할 자료들이 저절로 발견된다. 부처가 ‘중생’ 이라고 이른 말은 바로 노이로제와 동격의 의미이다. 탐진치에 매인 중생이란 사랑과 인정에 목마른 노이로제의 동기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분석의 대상은 환자는 물론이려니와 자기의 문제해석을 통해 성장하려는 사람들이다. 분석을 향상시키려면 우선 관심과 공감적 직관이 요구된다. 이런 점에서 문학 작가들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직관적 능력은 매우 유리하겠다.
엊그제 나는 이 글을 구상하다가 늦게야 잠자리에 들었다. 먼저 잠이 든 아내가 계속 신음소리 같은 잠꼬대를 했다. 좀처럼 없는 일이기에 나는 아내의 마음을 헤아려 보았다. 아마도 죽은 친구의 남편과 시집간 딸에 대한 것으로 짐작하며 나도 모르게 잠에 빠져버렸다. 아침 식탁에서 시종일관 시무룩하고 긴장된 아내의 모습을 보며 지난밤 무슨 꿈을 꾸었느냐고 물었더니 아내는 두 가지 꿈 이야기를 해주었다.
첫째 꿈은 “신발가게에서 하얀 샌들을 보았지요. 그중 내가 한 짝을 신고 있었는데, 내 것은 검은 샌들이지 뭐에요...”.
둘째 꿈, “도둑이 집에 들었는데, 소리를 지르고 싶은 데도 목소리가 나와야 말이지요...” 연상을 묻던 나는 빙긋이 웃고 말았다. 왜 웃느냐고 묻는 아내의 핀잔에 나는 설명했다.
“당신 친구의 남편이 죽었잖아, 과부가 된 친구와 자신을 비교한 게지. 당신은 과부가 안돼서 얼마나 다행이야.” “그리고 또, 딸이 시집간 딸에게 몫돈을 주어 보냈으니 도둑 맞은 기분이 들 밖에.” 정답인지는 몰라도, 수긍이 간다는 아내의 표정에는 한결 걱정을 덜었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내 꿈을 이용해 나 자신을 이해한 적도 많았다. 습관적으로 해몽을 하다보니 꿈을 꾸면서 분석하는 잠을 자기도 한다. 30여 년 전 군복무를 마치고 한동안 미국으로 갈까 아니면 모교에 남아 인턴을 할까 번민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미래를 꿈이 결정해 주었다.
꿈속에서 나는 어느 커다란 불고기집을 지나고 있었다. 집 앞에는 다리가 놓여 있었는데, 음식점으로 들어갈까 아니면 다리를 건너갈까 망설이다 나는 그만 불고기집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나의 고민 그대로였다. 그것으로 나는 모교에서의 수련을 결심했다. 꿈이 제시하는 의미에는 나 혼자는 다리(바다)를 건널 독립심이 부족하다는 뜻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후일 생각해 보아도 나에게는 혼자서 미국 생활을 할 수 있는 배경과 배짱이 부족하였고, 또 후회도 없다.
군복무가 끝날 즈음이었다. 아이가 둘이나 되는 나는 군병원에서 정관절제수술을 결심하고 수술 날짜를 잡았다. 그날 밤 꿈속에서 나는 다리 위에 서 있었다. 홍수가 난 강물구경을 하고 있는데, 커다란 구렁이가 떠내려가는 걸 보았다. 느낌은 잊었지만 그것으로 나에게는 음경상실과 유사한 거세공포가 있음을 알아 수술을 포기하고 말았다. 때문에 후일 아내를 불임수술의 후유증에 시달리게 하였는데, 막내로 자란 나의 유약함은 어쩔 수가 없었다.
부끄럽게도 나는 실수가 잦은 사람이었다. 의사가 내 천직이 된 것도 그 실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의 대학진학 시기는 김찬삼 교수가 한창 인기를 얻을 때였다. 나도 그처럼 유명한 지리학교수가 되어볼 것이란 환상에 부풀어 문리과대학에 응시했다. 무사히 필답시험을 치르고 난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만 오후에 있을 면접시험을 다음 날로 착각하고 말았으니. 미역국을 먹은 것은 당연했지만 그 바람에 이듬해 등록금 마련 때문에라도 꿈꾸지 못했던 의대로 진학을 하였으니, 운명이라 해야 할지 새옹지마라 해야 할지. 그 실수의 이유를 알게 된 것은 후일 정신과 수련을 통해서였다. 그것의 상술은 다음기회로 미룬다.(졸작, 실수만세 참조)
정신분석의 용도
중요한 책 한 권은 평범한 책 백 권을 읽는 것보다 낫다고 한다. 내 경우는 정신치료에 관한 서적들이 바로 그랬다. 실제로 임상에서도 명약이 되어줄 책들이 있는데 나는 선택적으로 권하고 있다. 정신치료(분석포함)가 정신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 모두에게 효과를 기대할 수도 없다. 불가에서 말하는 ‘근기’의 수준에 달렸다고 말하는 편이 옳겠다. 근기란 통찰력을 뜻하는 것으로, 이를 상중하로 나누어 다시 상중하로 분류함으로 아홉 단계로 나눈다. 상중상의 근기를 가지면 능히 염화시중의 묘법으로 통할 것이며, 하중하 근기에게는 정신치료보다는 극락과 지옥의 세계를 말함이 더 적합한 안내가 된다. 이는 글쓰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중중하 근기의 작가는 자기자랑에 바쁠 것이며, 글이 끝날 때까지 독자의 눈을 사로잡으려면 적어도 중중상의 수준은 되어야함이나 마찬가지다. 어떤 이는 정신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평생을 신체적 통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도 있다. 말(정신치료)로 치료할 수 있는 대상은 생각보다 적다. 지지적 치료와 분석적 치료가 그 대상을 달리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분석치료가 가능해지려면 우선 정신치료적인 마음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똑똑한 것은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방해가 될 때가 없지 않다. 똑똑하다는 것은 ‘지식화’가 방어체제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이란 ‘방어에 대항하는 또 하나의 방어’이기 때문에 작가를 분석하려면 방어체제에 대한 방어벽부터 깨져야 된다.
처음 글쓰기를 시작할 때 겪은 일이다. ‘있는 그대로’ 쓴 글은 이유도 모르는 채 많은 지적을 받았다. ‘너무 정직한 글은 안 된다’ 는 것이 이유였다. 삶은 진솔해야 한다면서 이 무슨 당찮은 가르침인가. 정직하면 감동이 없다니... ‘글은 방어 시스템을 교묘하게 이용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 때였다. 방어란 무엇인가. 살아남기 위해 터득한 인간의 원초적 적응력이다. 프로이트의 딸 안나 프로이트는 그 방어체계를 정비하여 책<에고와 방어기제>을 엮었다. 억압, 부정 등 수십 개의 단어들이 함께 정리되어 있어 후진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정신분석은 도(道)에 이르는 입문이다. 미숙한 방어기제로 갈등을 갖고 살아야만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성숙의 도를 수도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는 작업이다. 그런 의미에서 달라이 라마가 매일 수행하는 작업이 ‘분석’ 이라는 소식은 결코 놀라운 것이 아니다. ‘내가 너를 어떻게 다치게 하고 있나’ 그것을 고민해야 한다. 사랑과 미움이 얽히는 짜임의 역동을 이해하는 기술, 내 비의식(무의식)이 무엇을 말하는 가를 아는 것이 바로 정신분석이다.
정신분석, 이 뭣고(1)
김 종 길
쓰나미의 두려움으로
인생은 사랑과 미움의 씨줄 날줄로 엮어진 타피스리이다. 실의 정교한 짜임새와 꼬인 매듭들로 이루어진 이 작품을 다시 수정하려면 엄청난 공정이 요구된다. 이는 다 자란 나무를 전지하려는 것이나 다름없다. 성장의 시간들로 다져진 작품에서 실들의 짜임새를 이해하고 고치려면 현미경으로 때로는 과거를 회귀하는 망원경으로의 관찰이 필요하다.
프로이트가 그 관찰의 현미경을 발견한 이래로 10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 큰 흐름은 의학은 물론 예술에까지 도도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나도 한때는 새로운 한 사람의 프로이트가 되려고 작심한 적이 있었으나, 지금 대양 같이 엄청난 과학의 바닷가에서 해수욕을 즐기는 한 과객이 되어있을 뿐이다. 그러나 서핑을 하고 태양욕을 즐기는 동안 나는 그 바다에 매료되었고, 바다는 이제 내 일부가 되어서 살아왔다. 감히 정신분석에 대해 논하려함은 부산 앞바다의 작은 해변을 논함이나 다르지 않다.
정신과에 입문하고 프로이트를 공부하기 시작한 지 어언 삼십년, 정신의학의 해저에는 프로이트 말고도 너무나 많은 인물과 이론들이 쌓여있음을 알았다. 요즘은 전국 어디에나 수련규정 매뉴얼이 있지만, 당시만 해도 교실의 주임교수에 따라 수련지침이 달랐다. 나의 수련은 생물정신의학의 흐름을 지향하고 있었다. 당시의 추세는 정신분석에서 생물정신의학으로 흘러가는 추세였다. 반세기 전에는 미국 대학병원의 주임교수 거의가 정신 분석가였고 생물정신의학으로 방향전환을 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다시 과거로 회귀하는 경향으로 양면의 조화가 요구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대학병원의 교수들 대부분이 생물정신의학자이다. 정신치료는 개원가로 미루어 지는 감이 없지 않다.
군의관을 마친 후 나의 관심은 정신치료 쪽으로 가고 있었다. 이십 수년 동안 나는 정신치료적 임상의로 지냈다. 거대한 분석의 바다를 논하기에는 부족한 경험이겠으나, 작은 해변에서의 이러한 경험은 어려운 정신분석의 바다를 안내하는 길잡이로는 오히려 적합하리라 믿어진다. 글쓰기를 공부하면서 만난 선배들에게서 정신분석에 대한 개인적 경험을 소개하기를 권유받았을 때, 나의 작은 바다는 갑자기 망망 대해로 변했고, 쓰나미를 만나는 두려움으로 불면의 밤들이 이어졌다. 다소 위안이 되는 것이 있다면 사람마다 다양한 정신구조를 가졌기 때문에 치료경험 또한 다양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자위였다. 비록 자잘한 오류가 보일지라도 현명한 강호제현께서는 사적 경험의 오해로 봐 주실 것을 감히 기대해 보려한다.
정신분석이 본격적으로 논하여진지 백여년, 그동안 공과의 논란을 많이 받았지만 그러면서도 살아남아 도도한 물결로 흘러가 수많은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주 흐름의 세 개의 유파가 있는데 정통정신분석학파(자아심리학), 대상관계학파, 자기심리학파가 바로 그것이다. 앞으로 나의 이야기는 임상중심으로 될 것이고 유파와 관계 없이 흐를 것이다. 마치 사관생도가 학교에서 배운 기초 이론을 습득하되 전투에서는 실전에 유익한 전술을 발휘함과 같다고 하겠다. 치료는 전장이고, 거기에는 실전만이 있기 때문이다. 배(이론)를 건너면 배를 버리고 가야 하는 것이 정석이다. 따라서 나는 실전의 땀냄새 나는 이야기 중심으로 엮어갈까 한다. 이야기를 따라가는 동안에 독자들은 저절로 자신의 ‘문제’에도 접근하며 분석하는 기술을 터득해 가리라 여겨진다.
실생활에서 응용되는 분석
분석능력의 향상은 수련 중의 치료 사례 토론(지도 감독), 동료와의 상호지도, 자신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꿈, 실수, 환상, 실언이나 실수행동 등을 이용한 자가분석이다. 가장 친근한 자료는 언제나 자기의 문제들이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보면 주위에는 분석할 자료들이 저절로 발견된다. 부처가 ‘중생’ 이라고 이른 말은 바로 노이로제와 동격의 의미이다. 탐진치에 매인 중생이란 사랑과 인정에 목마른 노이로제의 동기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분석의 대상은 환자는 물론이려니와 자기의 문제해석을 통해 성장하려는 사람들이다. 분석을 향상시키려면 우선 관심과 공감적 직관이 요구된다. 이런 점에서 문학 작가들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직관적 능력은 매우 유리하겠다.
엊그제 나는 이 글을 구상하다가 늦게야 잠자리에 들었다. 먼저 잠이 든 아내가 계속 신음소리 같은 잠꼬대를 했다. 좀처럼 없는 일이기에 나는 아내의 마음을 헤아려 보았다. 아마도 죽은 친구의 남편과 시집간 딸에 대한 것으로 짐작하며 나도 모르게 잠에 빠져버렸다. 아침 식탁에서 시종일관 시무룩하고 긴장된 아내의 모습을 보며 지난밤 무슨 꿈을 꾸었느냐고 물었더니 아내는 두 가지 꿈 이야기를 해주었다.
첫째 꿈은 “신발가게에서 하얀 샌들을 보았지요. 그중 내가 한 짝을 신고 있었는데, 내 것은 검은 샌들이지 뭐에요...”.
둘째 꿈, “도둑이 집에 들었는데, 소리를 지르고 싶은 데도 목소리가 나와야 말이지요...” 연상을 묻던 나는 빙긋이 웃고 말았다. 왜 웃느냐고 묻는 아내의 핀잔에 나는 설명했다.
“당신 친구의 남편이 죽었잖아, 과부가 된 친구와 자신을 비교한 게지. 당신은 과부가 안돼서 얼마나 다행이야.” “그리고 또, 딸이 시집간 딸에게 몫돈을 주어 보냈으니 도둑 맞은 기분이 들 밖에.” 정답인지는 몰라도, 수긍이 간다는 아내의 표정에는 한결 걱정을 덜었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내 꿈을 이용해 나 자신을 이해한 적도 많았다. 습관적으로 해몽을 하다보니 꿈을 꾸면서 분석하는 잠을 자기도 한다. 30여 년 전 군복무를 마치고 한동안 미국으로 갈까 아니면 모교에 남아 인턴을 할까 번민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미래를 꿈이 결정해 주었다.
꿈속에서 나는 어느 커다란 불고기집을 지나고 있었다. 집 앞에는 다리가 놓여 있었는데, 음식점으로 들어갈까 아니면 다리를 건너갈까 망설이다 나는 그만 불고기집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나의 고민 그대로였다. 그것으로 나는 모교에서의 수련을 결심했다. 꿈이 제시하는 의미에는 나 혼자는 다리(바다)를 건널 독립심이 부족하다는 뜻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후일 생각해 보아도 나에게는 혼자서 미국 생활을 할 수 있는 배경과 배짱이 부족하였고, 또 후회도 없다.
군복무가 끝날 즈음이었다. 아이가 둘이나 되는 나는 군병원에서 정관절제수술을 결심하고 수술 날짜를 잡았다. 그날 밤 꿈속에서 나는 다리 위에 서 있었다. 홍수가 난 강물구경을 하고 있는데, 커다란 구렁이가 떠내려가는 걸 보았다. 느낌은 잊었지만 그것으로 나에게는 음경상실과 유사한 거세공포가 있음을 알아 수술을 포기하고 말았다. 때문에 후일 아내를 불임수술의 후유증에 시달리게 하였는데, 막내로 자란 나의 유약함은 어쩔 수가 없었다.
부끄럽게도 나는 실수가 잦은 사람이었다. 의사가 내 천직이 된 것도 그 실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의 대학진학 시기는 김찬삼 교수가 한창 인기를 얻을 때였다. 나도 그처럼 유명한 지리학교수가 되어볼 것이란 환상에 부풀어 문리과대학에 응시했다. 무사히 필답시험을 치르고 난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만 오후에 있을 면접시험을 다음 날로 착각하고 말았으니. 미역국을 먹은 것은 당연했지만 그 바람에 이듬해 등록금 마련 때문에라도 꿈꾸지 못했던 의대로 진학을 하였으니, 운명이라 해야 할지 새옹지마라 해야 할지. 그 실수의 이유를 알게 된 것은 후일 정신과 수련을 통해서였다. 그것의 상술은 다음기회로 미룬다.(졸작, 실수만세 참조)
정신분석의 용도
중요한 책 한 권은 평범한 책 백 권을 읽는 것보다 낫다고 한다. 내 경우는 정신치료에 관한 서적들이 바로 그랬다. 실제로 임상에서도 명약이 되어줄 책들이 있는데 나는 선택적으로 권하고 있다. 정신치료(분석포함)가 정신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 모두에게 효과를 기대할 수도 없다. 불가에서 말하는 ‘근기’의 수준에 달렸다고 말하는 편이 옳겠다. 근기란 통찰력을 뜻하는 것으로, 이를 상중하로 나누어 다시 상중하로 분류함으로 아홉 단계로 나눈다. 상중상의 근기를 가지면 능히 염화시중의 묘법으로 통할 것이며, 하중하 근기에게는 정신치료보다는 극락과 지옥의 세계를 말함이 더 적합한 안내가 된다. 이는 글쓰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중중하 근기의 작가는 자기자랑에 바쁠 것이며, 글이 끝날 때까지 독자의 눈을 사로잡으려면 적어도 중중상의 수준은 되어야함이나 마찬가지다. 어떤 이는 정신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평생을 신체적 통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도 있다. 말(정신치료)로 치료할 수 있는 대상은 생각보다 적다. 지지적 치료와 분석적 치료가 그 대상을 달리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분석치료가 가능해지려면 우선 정신치료적인 마음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똑똑한 것은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방해가 될 때가 없지 않다. 똑똑하다는 것은 ‘지식화’가 방어체제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이란 ‘방어에 대항하는 또 하나의 방어’이기 때문에 작가를 분석하려면 방어체제에 대한 방어벽부터 깨져야 된다.
처음 글쓰기를 시작할 때 겪은 일이다. ‘있는 그대로’ 쓴 글은 이유도 모르는 채 많은 지적을 받았다. ‘너무 정직한 글은 안 된다’ 는 것이 이유였다. 삶은 진솔해야 한다면서 이 무슨 당찮은 가르침인가. 정직하면 감동이 없다니... ‘글은 방어 시스템을 교묘하게 이용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 때였다. 방어란 무엇인가. 살아남기 위해 터득한 인간의 원초적 적응력이다. 프로이트의 딸 안나 프로이트는 그 방어체계를 정비하여 책<에고와 방어기제>을 엮었다. 억압, 부정 등 수십 개의 단어들이 함께 정리되어 있어 후진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정신분석은 도(道)에 이르는 입문이다. 미숙한 방어기제로 갈등을 갖고 살아야만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성숙의 도를 수도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는 작업이다. 그런 의미에서 달라이 라마가 매일 수행하는 작업이 ‘분석’ 이라는 소식은 결코 놀라운 것이 아니다. ‘내가 너를 어떻게 다치게 하고 있나’ 그것을 고민해야 한다. 사랑과 미움이 얽히는 짜임의 역동을 이해하는 기술, 내 비의식(무의식)이 무엇을 말하는 가를 아는 것이 바로 정신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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