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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길칼럼

제목

진드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6.11.03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3707
내용
눅눅한 공기, 장마가 지리하게 계속되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면 방송에서는 이불류를 햇볕에 널려 말리고 청결히 하도록 계몽을 한다. 일기가 습해지면 곰팡이나 진드기가 창궐함을 경계함이다.

아마도 이런 가르침을 귀담아 듣는 사람이 별로 있을성 싶지 않다. 그런데 진드기에게 너무나 혼줄난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이 경고에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게 될 일이다. 벌써 몇 해가 된 일이지만 진드기 생각만 하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나는 사무실의 습도를 조절할 목적으로 건기에는 가습기를 줄곧 켜놓는 버릇이 있었다. 아직 그리 습하지 않은 초여름의 어느날이다. 업무중에 다리부분이 미세하게 따끔거리는 감촉을 느꼈다. 언제나 가벼운 그런 감촉은 경험하던 일이라 대수럽지 않게 넘어가려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여기 저기가 따꼼거리며 신경이 쓰일 지경이 되었다. 종일을 영문모르고 참으며 지냈고 퇴근길에 차안에서도 이런 느낌은 계속되었다. 집에 도착하자 불이나게 목욕탕으로 달려들어가서 웃옷을 벗어제끼고 원인탐색에 돌입하였다. 어린 시절에 경험한 벼룩같은 게 있을리도 없고 고약한 일이라고 중얼거리며 내의를 살피자니, 아 거기 러닝샤쓰 새하얀 표면에 새빨간 점들이 너댓개, 까만 점 두엇이 옴실거리고 있지를 않은가.

이 작은 생명들이 바로 범인이구나. 조심스레 빨간 점 하나를 집어내어서 손바닥에 올려 놓으니 여전히 살곰 살곰 움직이고 있다! 이를 어쩌나. 혹시 쥐이는 아닐까. 벼룩같으면 튈텐데, 그도 아니고 이상하다. 혹시나 싶어서 손톱 위에 올려놓고 옛날 이를 잡던 솜씨로 짓누르니 으아 나의 피가 거기 터져 나오고 있지 아니한가. 하루종일 나를 빨아먹은 피가 으깨어 쏟아진다. 온 몸이 더욱 굼실거리기 시작했다. 화가 나서 보이는 대로 토벌을 하고 뜨거운 물로 샤워를 마치고나니 기분이좀 나아졌다. 진드기다. 쥐에 서식하는 진드기가 창궐한 것이 틀림없다고 단정하였다.

이튿날 아침 출근하여 복도의 의자에서 조간신문을 펼쳐들고 읽고 있는데 왼손등에 이물이 곰실대는 느낌이 오고, 까만 점이 움직이고 있는 걸 확인한다. 이 놈, 걸렸구나, 혼좀 나봐라, 조심스레 손끝으로 집어올려 손바닥에 놓으니 너무나 작은 까만 점 하나가 계속 움직이고 있다. 이 놈을 그냥 두었다가는 온종일 또 나를 빨아 먹을 일이다 - 나는 이층에 있는 피부과로 달려올라가서 현미경 시야에서 그 놈의 정체를 확인하고져 하였다.

과연 거기에는 몸통이 동그랗고 토실한 외계인같은 괴물, 진드기 한 마리가 살아움직이고 있었다. 피부과 원장님은 환자가 잡아온 진드기를 현미경으로 확인하는 일은 생전 처음 있는 일이란다. 그럴 수밖에 없을게다. 누가 그걸 알고 잡아올 수가 있었겠나. 이런 극적 순간에 잡힌 그 놈이야말로 재수가 없는 진드기였다. 진료실은 즉시 진드기 소독으로 난리가 났고 나는 진드기 습격의 희생자가 되어서 여러날을 피부질환으로 고역을 치루었다. 온 몸 백여군데가 부르터 오르고 근지러운 환부가 끔찍해 보였고, 계속하여 약을 먹어야 했다. 나와 유사한 증상을 경험하는 환자들을 많이 보았지만, 진드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는 원장님의 말씀이다.

예전에 어머니한테 살쐐기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도 없으면서 맨살이 미세하게 따꼼거리면 아마도 그런 표현을 했을성 싶다. 진드기의 무는 것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단다. 나 자신도 예전에 많이 경험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진드기 물림에 대한 알레르기가 생기게 되면 물린 상처에 항원항체반응이 일어나면서 자가독성으로 물린지 수일 후부터 피부병이 승하고, 긁어서 이차감염이라도 된다면 회복까지는 여러 날을 고생하게 되는 것이다.

진드기는 미소한 거미류의 절지동물에 속한다. 보통 크기는 일 미리미터로 육안으로는 작은 점으로 보인다. 머리, 가슴, 몸통의 구별없이 융합되어 한 덩어리다. 다리가 네쌍이고 알에서 부화하여 성충이 되는데는 한 달이 걸리고 사람이나 짐승의 피를 빨아먹고 산다. 한번 기생하면 며칠이고 계속 흡혈한다. 전체 진드기중에 사람이나 가축에 유해한 것은 약 10%정도이고 환경에 적응하는 양태가 다양하다고 한다. 사람이 떨어뜨리는 피부껍질 일그램이면 수천마리 진드기가 한 달 먹는 양식이 된다니 이들에게는 양식걱정은 없을 일이다.

초등학교 시절 이웃할머니가 들려주던 진드기 타령이 생각난다.

진드가 진드가 (쯧쯧쯧쯧)/ ... 오뉴월 염천에/ 뭘 먹고 살았니/ 황소붕알을/ 뚝떼어 먹고서 / 행길 바닥에 /뚝 떨어졌더니/ 오는 행인/ 가는 행인 / 꽉 밟아서 / 툭 터졌다 /...

한 소절마다 쯧쯧쯧쯧 혀를 차는 후렴을 넣어가면서 읊어주던 할머니의 짓꿋은 표정이 떠오른다. 철부지 어린 나에게 그 할머니는 무슨 재미로 이런 타령을 배워주었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몇번이고 따라 불러 익혔다. 그 희화된 주인공에게 비웃은 대가를 이토록 혹독하게 치르리라고는 꿈에도 상상 못하였다.

분별없는 가습기 사용으로 실내습도가 높아지면서 진드기는 제세상을 만난 것이었다. 이후로는 가습기사용도 조심하면서, 하찮게 여겼던 미세생물에 대한 경계심도 높히고, 진드기경보도 실감나게 듣게 되었다.

세상엔 사람말고도 수많은 종류의 진드기, 곰팡이, 박테리아, 바이러스 등 미세생물들이 함께 살고 있다. 악어와 악어새가 공생하듯이 우리도 공생하고 있다. 우리의 대장 속에는 대장균, 유산균주가 있고, 우리의 입과 동굴 속에는 소위 정상균주라 불리는 엄청난 생명들이 더불어 살고 있다. 우리는 이들과 함께 살면서도 우위의 건강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되는 운명에 있다. 만약 숙주인 우리가 허약해지면 그들은 순식간에 창궐하여 침습한다. 졍글의 법칙, 한반도 정세도 이런 현실에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도 인식하여야 한다. 더불어 사는 그러나 힘의 우위를 지키는 지혜러운 삶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생생히 체험한 소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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